인간극장 (1TV, 5월21일~25일) 봄날은 간다

KBS 1TV <인간극장>

 

■ 방송 : 5월 21일 (월) ~ 25일 (금) 오전 7시 50분, KBS 1TV

 

봄날은 간다

    

오직 자식만을 위해 살아온 그 여자, 길춘의 여든 일곱 번째 봄날

전북 임실에는 물안개가 아름다운 옥정호가 있다. 섬진강 댐이 건설되면서 만들어진 인공 호수, 그 때문에 마을이 수몰되는 아픔을 겪었지만 주민들은 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유지하며 호수에 기대어 살았다. 옥정호의 풍경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오래된 집에 살고 있는 송길춘 할머니, 여든 일곱 번째 봄을 맞았다. 벚꽃이 지고 유채꽃 만발하는 완연한 봄날, 지천에 깔린 파릇파릇한 봄나물들이 할머니를 유혹한다. 다리가 아프다고 연신 앓는 소리 하면서도 비탈길에 올라 숨어있는 쑥이며 고사리를 귀신같이 찾아낸다. 길춘 할머니가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허리 펼 새 없이 일을 쉬지 않는 이유는 온전히 자식들 때문이다.

    

열아홉에 만난 남편과 10년을 함께 보내고 꽃다운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청상이 되었다. 길춘 할머니는 남겨진 삼남매를 홀로 키우면서 자식들 밥 굶기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한평생을 살아왔다. 배를 타고 호수 건너, 굽이굽이 산길 걸어, 20리 길을 오가며 장에 물고기를 내다 팔아 돈을 벌었다. 틈틈이 농사까지 지으며 길춘 할머니는 손에서 일을 놓지 않았다. 참으로 억척스러운 인생이었다.

    

남편 떠날 때 세 살이던 막내도 어느덧 환갑을 넘겼지만 할머니는 평생 몸에 밴 바지런함으로 여전히 자식들을 챙긴다. 농사를 짓는 큰 딸을 만나러 가면 고추 모종이라도 함께 심어줘야 직성이 풀리고 작은 딸이 운영하는 목욕탕에서는 하다못해 목욕 수건이라도 개야 한단다. 맞벌이 하는 아들 부부를 위해 전주에서 어린 손자들을 돌보느라 오랜 시간 함께 지냈던 길춘 할머니. 하지만 코 흘리던 손자들이 대학교에 들어가자마자 할머니는 옥정호로 돌아왔다. 농사지을 땅과 집이 있는 ‘내 고향’ 옥정호를, 길춘 할머니는 떠날 수 없다.

    

어릴 때부터 유독 엄했던 어머니인지라 삼남매는 모두 나이가 예순이 넘었지만 아직까지도 어머니에게 꼼짝을 못 한다. 아버지 없이 자랐다고 남에게 험한 소리 들을까, 자식들에게만큼은 매서웠던 길춘 할머니. 그렇게 애면글면 키운 덕에 자식들은 하나 같이 효심이 각별하다. 직장에 다니면서도 주말마다 어머니 집에 들르는 아들 윤석철(61) 씨. 황토방을 만들고, 농사일을 돕고, 앞마당에 어머니가 좋아하는 꽃을 심는다. 평생 자식만 위해 사느라 당신을 위해선 변변한 옷 한 벌 사본 적 없다는 길춘 할머니. 그런 어머니에게 철마다 옷을 해드리는 두 딸, 영자(69), 순자(65)는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양말 한 짝, 두부 한 모까지 살뜰히 챙긴다.

    

어버이의 날을 맞아 온 가족이 모였다. 손자들이 준비한 카네이션과 선물에 길춘 할머니의 얼굴이 꽃처럼 활짝 피었다. 계절 바뀌는 줄도 모르고 살아온 날들, 고생한 지난날을 알아주는 자식들이 있어 흘러간 세월이 서럽지는 않다. 그렇게 어머니의 여든 일곱 번째 봄날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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